[홍진채님의 Via Negativa]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연초부터 시장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면 너무나 교과서 같은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지수가 높아지고, 유동성을 흡수하고, 미래가치를 선반영하던 자산군 위주로 하락하고, 좀 더 듀레이션이 짧은 자산의 가격이 상승 혹은 상대적으로 선방하였습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교과서 같은 국면이라 오히려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막상 좋은 주식은 그다지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좋은 주식이란 (제 취향에 맞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할 잠재력을 보여주면서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주식을 뜻합니다.
이런 주식들이 도매급으로 와장창 하락하는 때가 가끔 있기는 한데, 1월에는 그런 장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가격이 과거 대비 월등하게 매력적이게 되면 주워 담으려고 준비하던 그런 주식들은 그다지 많이 하락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국면에 취약한 주식, 즉 빠질 만한 주식들이 빠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이제 투자자들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유동성 회수 시기에는 이러이러한 유형의 주식을 담아야 한다, 혹은 시장이 더 하락할 수 있으니 현금을 확보했다가 다시 들어와야 한다, 아니다 곧 상승장이 올 수 있으니 깨질 때 깨지더라도 반등할 때 따라붙을 수 있는 주식을 미리미리 사둬야 한다 등등 다양한 주장을 나누고 있습니다.
펀더멘탈이 유동성 축소를 이길 수 있는가?
오늘은 첫 글이니,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무시해야 할지 커다란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예를 들어 금리 인상 국면에서 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가장 최근의 금리 인상 국면은 2015~2018년이었습니다.
이때는 주가가 상승했습니다. 따라서 금리 인상은 시장에 악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주장은 틀렸습니다. 2015년은 2008년 금융위기를 딛고 일어서 기업이 성장하는 시기였으며, 더블 딥 우려와 유럽의 재정위기도 차근차근 극복해가던 중이었습니다. 펀더멘탈이 유동성 흡수를 앞서던 시기였고 따라서 주가가 상승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중반의 금리 인상을 지적하면서 주가가 올랐다고도 하지만, 이때는 소위 ‘골디락스’라고 불리는 호경기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공급망 이슈로 인하여 물가가 상승한 상태입니다. 유사한 시기는 1970년대입니다. 경기는 안 좋은데 금리를 낮췄다가는 인플레이션을 심화할 수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기였지요. 당시 미국 주가는 10년간 횡보했습니다. 물론 그때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당시는 미국의 국력이 약해지던 시기, 아랍 국가들이 고개를 들던 시기, 냉전에서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위태롭던 시기였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과거 어느 시점을 사례로 삼을 것인가?’가 아니라 ‘펀더멘탈이 유동성 축소를 이길 수 있는가?’입니다. 그 관점에서 과거 사례를 참고 사항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인플레이션은 실물에 대한 수요와 공급, 그리고 유동성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에는 좋은 인플레이션과 나쁜 인플레이션이 있습니다. 실물에 대한 수요가 강해서 물건 가격이 올라가는 국면은 좋은 인플레이션입니다. 이때는 유동성을 흡수하여 시장에 거품이 끼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연준이 할 일입니다. 공급이 부족해서 생기는 인플레이션은 나쁜 인플레이션입니다. 생산단가가 올라서 이윤을 남기기 어려우니 생산을 축소하고, 생산을 축소하니 제품 가격은 상승하고, 이 가격 상승이 다시 생산단가 상승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국면에서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금리를 올려도 생산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고, 금리를 낮춰도 딱히 좋아질 건 없습니다.
현재는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 부진이 경제를 망가트릴까 하는 두려움에 유동성을 풀어서 수요를 보전하였고, 수요는 나쁘지 않은 와중에 전염병(및 기타 이슈들)으로 인하여 공급망이 회복되지 않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준은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정도의 대응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연준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가 있고, 이제는 코로나를 계절성 풍토병으로 선언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인플레 국면에서도 이익을 늘릴 수 있는 기업은?
인플레이션 시기에 골라야 할 섹터로 음식료 업종이 갑자기 대두되고 있습니다. 물가가 올라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정권 말기니까 제품 가격을 슬금슬금 올린다, 라는 근거입니다. 그 주장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좀 더 큰 그림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음식료 업종은 P(가격)와 Q(수량)는 고정되고 C(원가)의 변동이 심한 업종입니다. 현재는 어떤 국면인가요? 원가 상승 국면이지요. 특히 의외로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다른 원재료가 유가에 연동되는 면이 있기도 한데, 음식료의 포장재가 다 석유 제품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원재료들은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어떤 국면이지요? 유가 및 원재료가 상승, 운임 상승, 임금 상승 등 생산단가가 급증하는 구간이며 환율도 약세입니다. 제품 가격은 정권 말기에 오르는 경향이 있기는 한데, 아쉽지만 이미 그 이슈로 2021년 중반에 다 같이 주가가 한 번 달렸습니다. 지난 대선 이후로 선거 일정이 앞당겨졌고, 대선을 아이디어로 음식료주 주가가 움직이는 타이밍도 앞당겨진 감이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시기라 해서 종목 선정이 대단히 달라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런 시기일수록 결국 이기는 주식은 EPS(주당순이익)가 증가하는 주식이었습니다. 인플레든 디플레든 알아서 잘하는 회사가 잘하는 거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인플레 수혜 업종이 무엇이냐?’보다는 ‘인플레 국면에도 이익을 지키고 더 늘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이 누구냐?’인 게 더 낫습니다.
한참 동안 PER(주가수익비율)의 시대는 갔고 PDR(주가꿈비율)의 시대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소위 ‘PDR론자’들은 최근 국면에서 분통을 터트리고 있고, ‘PER론자’들은 드디어 그동안의 치욕을 갚았다고 즐거워합니다. 흠. PDR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래서 그 주식은 PDR이 몇 배입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PDR의 R은 Ratio입니다. 두 수치를 비교하는 지표에 ~~R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수치화할 수 없으면 ratio가 아니지요.
PDR은 굳이 표현하자면 ‘기업이 성숙 국면에 다다른 시점의 PER’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기업이 현재 100억을 벌고 있고 30년 후 1조를 벌 것 같은데 현재 시총이 3조라면 PER은 300배, PDR은 3배인 거죠.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PER이 낫습니까, PDR이 낫습니까?’가 아닙니다. ‘기업이 향후 몇 년간 얼마만큼의 고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까? 다른 투자자들의 전망은 어떠합니까?’입니다.
유동성 축소로 인한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신흥시장(EM)보다 선진시장(DM)이 강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최근은 오히려 신흥시장이 더 나은 모습을 보입니다. 인플레이션 국면이라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시장은 실적이 꽤 선방할 수 있는 반면, 선진시장 국가들은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인하여 과거와 같은 이익률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게 일차적인 해석입니다.
좀 더 넓은 그림에서 보자면, 그간 선진시장의 기업들은 플랫폼을 확장하며 고부가가치를 누렸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미래가치를 현재가격에 잔뜩 반영해왔습니다. 신흥시장은 저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그만큼의 유동성을 흡수하지 못했고요. 원래는 달러 확장 국면에서 이머징마켓으로 돈이 들어갔다가 유동성 흡수와 함께 이머징마켓이 붕괴되고, 선진국 투자자들은 또 이러한 싼 가격에 우량 자산을 ‘줍줍’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달러 인플레이션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음모론이라고 부르고요.)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듯 특정 변수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그 하나의 변화에만 주목하고 포트폴리오를 바꾸어서는 좋은 대응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더 많은 변수를 가져온다 한들 예측의 정확도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할 일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변하는 것이 얼마나 변했는가, 변하지 않는 것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위의 여러 사례에서, 원자재 가격, 유동성, 기업의 이익 등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식은 기업의 자기자본에 대한 소유권이다. 즉 기업의 이익잉여금이 주주가치의 원천이다. 가격에는 기업의 미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반영된다. 화폐가치는 화폐 발행자(국가)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다. 화폐가치는 장기적으로 하락해왔다. 인간은 생존과 번영을 추구한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대부분 휴리스틱(간편추정법)을 따른다. 이런 명제들이겠지요.
변하지 않는 명제들을 바탕에 깔아두고, 변하고 있는 변수들을 하나씩 대입해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립니다. 다양한 시나리오 중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유리할 수 있는 포지션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을 관찰합니다. 이게 다입니다.
갑자기 러시아의 전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각국 정상들의 전화 회담, 병력 배치, 유가 움직임 등을 파악하는 것은 ‘변하는 것’을 따라다니는 일입니다. 무시해도 될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좀 더 공부를 해보자면, 나토의 동진정책이 무엇인가, 러시아의 대전략에서 우크라이나와 흑해가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왜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에 강경한 발언을 할 수 있지만 대륙 유럽은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는가, 러시아는 진짜 강대국이 맞나 등등을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쌓여가는 지식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줍니다. 좀 더 가보자면, 조직의 의사결정 체계는 어떻게 되는가(수장을 맡고 있는 특정 개인들의 의사결정인가, 각 구성원들의 이해상충의 총합인가), 전쟁은 언제 일어나는가(깔려 있는 도화선이 터질 뿐인가, 우발적인 사건의 중첩인가, 혹은 국민감정인가) 등을 공부해볼 수 있겠지요.
좁은 식견으로 썰을 풀어보자면, 러시아는 생각만큼 강국이 아닙니다. 지리적 이점 덕에 강대국 행세를 할 수 있었지만 실속은 미약합니다. 다만 군사력 지출 비중이 높고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원을 쥐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부-동부 유럽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러시아는 아마도 내부의 불안정에서 외부로 시야를 돌리기 위하여, 그리고 유가 강세 상황을 레버리지하기 위하여, 오랜 숙원(러시아의 옛 이름은 키예프 루스입니다. 키예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죠)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점령 카드를 꺼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에 나토 가입을 신청하였다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쪽을 택한 이력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최빈국 자리를 다툴 정도로 상황이 영 좋지 않습니다. 유럽이든 러시아든 어디에선가 지원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이렇게 위기가 고조되고 국제사회의 이목을 끄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결국 서로 간에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으면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여나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미-러 간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한편 전쟁이 나더라도 주가는 오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글쎄요. 과거 양차 세계대전 혹은 냉전 때 주가가 오른 경험이 있긴 합니다만, 당시는 공급망은 살아 있으나 수요가 부진하다가 전쟁으로 인하여 공장이 파괴되고 수요가 증가하지 않았던가요. 4차 중동 전쟁 혹은 베트남 전쟁 말기의 주가를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들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썰은 그냥 썰일 뿐입니다. 얼마든지 틀릴 수 있죠. 맞히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여파로 나타날 변화에 내가 얼마나 노출되어 있느냐죠.
·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적당히 마무리된다 → 별 영향 없거나 리스크 완화로 좋을 수 있겠죠.
· 전쟁이 일어나고 (여러 사람의 예상대로) 주가가 상승한다 → 뭐 괜찮죠.
· 전쟁이 일어나고 주가가 급락한다 → 전면전이 아니라면 결국 펀더멘탈 따라 반등은 할 테고, 급락한 주식을 사는 기회로 활용하면 되겠죠.
· 일시적으로 유가가 급등한다 → 인플레는 더 심해질 것이고 인플레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의 주가는 더 하락한다 → 포트폴리오 기업들을 점검해보아야겠습니다.
· 미국이 비축유를 풀고 저유가로 러시아를 압박한다 → CPI(소비자물가지수) 하락 트리거가 되겠네요. 만세?
· 전면전이 벌어진다 → 주식이 문제입니까.
뭐 세상일이 대체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매일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만 진정 새로운 일은 별로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