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공부/투자원칙 철학

[홍진채님의 Via Negativa]채찍 효과가 끝날 때

짱가라 2023. 2. 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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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업종의 매수매도를 추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투자의사결정은 각자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여야 합니다.

요즘 시장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4%의 인플레이션에도 깜짝깜짝 놀라던 우리는 이제 6%, 7%의 인플레이션에도 어느 정도 무덤덤해졌습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는 저뿐만 아니라 여러 분들께서 잘 다루어주셨습니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 새로이 투자 기회가 찾아오곤 합니다. 이제는 슬슬,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을 떠올려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채찍 효과Bullwhip Effect'를 아십니까? 공급망 관리SCM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요. 공급이 계단식으로 늘어나고 수요의 변동이 심한 산업에서 종종 발생하는 어떤 특이한 현상을 부르는 말입니다.

채찍 효과란 다운스트림의 고객주문 정보가 업스트림으로 전달되면서 정보가 왜곡되고 확대되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공급망에서 정보 흐름이 지연된 결과 소폭의 수요 증가가 대폭 공급 증가로 나타나고, 소폭의 수요 감소가 대폭의 공급 축소로 이어지는 현상입니다.

 

사이클 변동이 심한 산업에서는 이 현상이 재귀적으로, 즉 수요와 공급이 서로 반응하여 나타납니다.

수요가 공급에 독립적인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공급 축소가 있을 경우 수요의 큰 폭 확대, 즉 '사재기' 현상이 나타납니다. (채찍 효과에 대해서는 군터 뒤크의 '호황 VS 불황'이라는 책에서 자세하게 다룹니다.)

 

현재 우리는 석유, 곡물, 니켈 등 원자재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채찍 효과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반도체 공급이 부족하여 자동차 생산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하다하다 못해 몇몇 반도체가 필요한 부품은 아예 없는 채로 생산해서 밖에 세워둔 다음, 필요한 반도체가 도달하면 나중에 부착해서 출고하는 식으로까지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구매관리자들은 과거와 다른 행태를 취하는데요. 평소보다 반도체 주문량을 더욱 늘립니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니 반도체 공장에서는 주문이 늘어난다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건 아니고, 스팟 가격(장기계약물량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장에 출하하는 물량에 매기는 가격)를 올릴 뿐입니다. 문제는 중간 유통상들입니다. 유통상들은 언제나 재고를 확보해두고 있는데, 이들은 가격 상승이 지속될 걸로 판단하면 오히려 물량을 덜 내놓습니다. 고객이 주문을 하더라도 물량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가격을 더 올려받는 거죠. 그럼 최종고객(자동차회사)들이 감지하는 물량 부족 정도는 실제보다 더 심해집니다. 그럼 어떡하죠?

 

최근 들어 재고관리 분야에서 '저스트 인 케이스'라는 재고관리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생산효율화, 재고최소화를 의미하는 '저스트 인 타임'에 대비되는 용어입니다. 만일에 대비해서 원래라면 주문하지 않았을 상황까지 가정해서 원재료를 쌓아둔다는 개념입니다. 이 용어는 2020년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요, 자연재해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은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촘촘한 공급망이 존재하고, 공급을 한 번에 늘리기 어렵고, 정보 전달이 즉각적이지 않은 모든 분야에서 이런 일은 발생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3년간 돌발사태를 너무 많이 겪었으니까요. (세상에 전쟁이라니요.)

 

그럼 이 채찍 효과(군터 뒤크는 '돼지 사이클'이라고 불렀습니다 ㅎㅎ)가 풀릴 때는 어떻게 될까요? 어떤 이유로든 일단 공급 축소가 해소되었다고 합시다. 코로나 종식이든 휴전 협상이든 뭐든 간에요. 생산이 늘어나기 전에 우선 중간 유통상에서 물량이 출하됩니다. 최종고객의 구매담당자들은 원재료 수급 계획을 다시 짭니다. 구매 물량을 줄입니다. 스팟 가격이 하락합니다. 유통상은 재고를 더 빨리 풉니다. 이 상황은 가속화되는데, 막상 유통상이 아닌 공급자들에게는 고객의 수요 감소가 뒤늦게 전달됩니다. 공급자 중 일부는 공급량을 늘릴 계획을 (6개월에서 2년쯤 전에) 세워놓았습니다. 증설 계획은 한 번 결정하면 뒤집기 어렵습니다. 지연된 정보와 조직 의사결정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로, 수요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증설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최종 단계에서 가동 기간(램프업이라고 합니다)을 늦추는 정도가 공급자가 취할 수 있는 대응안입니다. 어쨌거나 공장/농장/탄광은 완공되었고 물량은 나옵니다. 중간 유통상은 구매폭을 줄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질병, 자연 재해, 전쟁, 그리고 정치적 이슈까지 모든 게 겹쳐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게 한번에 풀릴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심리입니다. 이 중 무언가 하나라도 풀린다 싶으면 연쇄적으로 다른 이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왜 이 타이밍에 전쟁을 벌였을까요? 나토의 동진은 수십 년간 이어져왔습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2014년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딱히 지금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국입니다. 코로나로 공급망이 막히고, 유가가 급등하면 러시아에게 운신의 폭이 늘어납니다. 근데 이제 코로나가 종식되려 하고 있지요.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 3월의 유가가 어떤 추세였는지 한번 보고 가겠습니다. 흥미롭습니다.

 

 

출처: https://tradingeconomics.com/commodity/crude-oil

 

한편 러시아는 재정이 취약한데 달러가 긴축 국면에 들어가면 더 힘들어집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금리 상승 시기입니다. 저는 테이퍼링도 사실상 금리인상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작년말부터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금리 인상은 3월부터였지만, 작년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의 종식은 이제는 정치적인 판단이자 관념의 문제입니다. 더 이상 확진자 추이를 보지 않고 사망자 추이가 더 의미있는 데이타가 될 때 코로나는 사실상 종식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데이타를 더 중요시하나요?

 

트리거는 유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거나 중동 국가들과 미국과의 협악(혹은 밀약) 등이 전쟁, 인플레이션,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의외로 중국과 미국이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유가 상승이 괴로운 나라거든요. 금리 인상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둘 다 취약한데, 유가에 대해서는 두 나라의 입장이 다릅니다.

 

작년에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이 화두로 등장하고, 연말께에는 BDI가 하락하여 이제는 인플레이션이 풀릴 단초가 잡혔다고 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컨테이너 인덱스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어렵다고 보았었습니다. 그 컨테이너 지수가 이제는 하락세로 접어들었습니다.

 

출처: https://tradingeconomics.com/commodity/baltic

 

BDI는 원자재, 컨테이너는 상품/반제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SCFI는 상하이에서 출발하는 컨테이너선의 스팟 운임지수고, CCFI는 중국 전체의 스팟 운임과 장기계약 운임을 함께 고려한 지표입니다. SCFI가 CCFI보다 좀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BDI는 2021년 하반기에 이미 급락했지만 컨테이너 가격은 오히려 더 올랐습니다. 원재료 수급은 풀렸지만 컨테이너 수급은 풀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022년이 되자마자 SCFI는 하락했고, CCFI도 뒤이어 하락합니다.

 

참고로 운임지수를 왜 이렇게 해석하느냐는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가격라는 건 이론적으로는 수요가 증가했을 때 올라가는 거니까, 운임이 상승할 때가 공급망이 해소된 때 아니냐는 거죠. 예 그렇긴 한데, 해상운임이라는 건 조금 복잡합니다. 이쪽도 아까 말씀드린 반도체 중간유통상과 비슷하게, 꽤 촘촘한 밸류체인이 엮여있습니다. 위 차트에서도 보이겠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의 운임 상승은 해상운임 캐파가 제한된 상황에서 선진국 수요가 늘어나면서 운임이 올라간 겁니다. 이때는 수요증가가 견인한 가격 상승입니다. 이후의 가격 상승은 해상운임 자체가 일종의 병목으로 작용하여 인플레이션에 기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운임지수 하락이 부분적으로 운임지수 하락이 병목 해소에 기여하고, 이게 구매자들과 중간유통상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다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위험은 구조에 내재되어있습니다. 어떤 이슈가 트리거가 되느냐는 의외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터졌을 때, 지금까지 쏠려있던 어떤 트렌드, '한때는 당연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혹은 '한때는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현재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급등하는 국면에서는 훌륭한 중소형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수급 쏠림을 당하면서 언더퍼폼하는 그런 상황을 우리는 못 겪어본 지 한참 지났습니다. 시장에 들어온 지 1, 2년밖에 안 된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요. (언젠가는 아시게 될 겁니다.)

 

우리는 현재 인플레이션을 당연시하고 있고, 4%의 인플레이션에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서프라이즈라며 좋아하겠지요. (한편 이런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연준이 물가목표를 현재의 2%에서 3%로 올린다면요? 연준이 과거보다 더 높은 물가상승을 용인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모두가 환호하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과장된 측면이 있고, 이는 생각보다 급격하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말씀드리듯이, 저는 타이밍을 맞추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현 시점에서 과도한 쏠림은 어디이며, 쏠림이 해소되는 시나리오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가 관심사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제가 보유한 기업들이 그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느냐고요.) 변곡점이 일어나는 그 시점이 4월이냐 7월이냐 내년이냐는 부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럼 다들 평온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추가 질문 답변

 

- 나그네 님 -> 기준금리 인하시기에 주식시장을 떠나야 하는가?

기준금리 인하시기는 보통 시장에 뛰어들 때라고 이야기하지 않나요? 역발상으로 오히려 떠나야 할 때인지를 물으시는 건지요. 혹은 기준금리 인하가 종료되면 주가 상승도 끝나니까 시장을 떠나야 하냐는 뜻인지요. 혹은 기준금리 인하를 전망하기 시작하면 이미 주가에 선반영되니까 떠나야 하냐는 뜻인지요.

 

어느 쪽이든 간에,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다른 의미로 하신 질문이라 하시더라도,) 기준금리를 전망하고 전체 진출입을 결정하는 전략은 별로 돈을 벌어다주지 못합니다. 최소한 제가 알기로는요.

 

- 으라라층 님 -> 드라마 컨텐츠사가 리오프닝이랑 무슨 연관?

딱히 리오프닝 수혜주라기보다는 과거와 구조적으로 달라진 비지니스를 하는 사례로 말씀드렸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코로나 피해주라고 인식되지요. 영화제작 쪽에서 자금이 돌기 시작하면서 수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OTT 관련해서도 정말 피해를 받는지는 고민해봐야 할 일입니다. 흔히 알려진 리오프닝주로 수급이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주가가 부진할 수는 있겠지만 펀더멘탈 측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지요.

 

- 투자와마음 님 -> 성숙기 산업의 1위 기업에 투자하여 3-5년 기다리면? 경쟁사는 눈물의 재고떨이 중

산업의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조정은 다양한 경로가 있을 수 있는데요. 업체 간의 통폐합, 퇴출, 사모펀드가 인수(하여 수익성 위주의… 눈물의……) 등이 있습니다. 다른 참여자가 떨어져나가야 남은 파이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업 하나가 청산되는 것도 참 어렵습니다. 제도적, 문화적으로 어려운 것도 있고, 기업의 '오너' 입장에서는 굳이 주주들을 위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더라도 지위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체의 퇴출, 통폐합 등으로 플레이어의 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면 업사이클이 돌아왔을 때 잠깐 수익성이 좋아질 수는 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경쟁이 심해집니다. 혹은 수익성이 너무 장기간 좋다보면 담합으로 과징금을 얻어맞을 확률이 점점 높아집니다.

 

한편 개별 기업으로 보자면, 성숙기 산업에 속한 기업의 특성은 관료적인 문화, 방만한 비용통제 등이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면 남아도는 현금으로 쓸데없는 데 투자를 하는 일들도 있고요. 이런 측면이 개선된다면 굳이 산업의 구조조정이나 업사이클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의외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PEF가 하는 게 그런 일이긴 합니다만… 쩝.)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막연하더라도 산업 내에서, 혹은 회사 내에서 어떤 시점까지 어떤 변화가 있을 거다 라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써보시는 게 좋습니다. 맞히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마음의 안정에는 기여하고, 현 투자 건이 실패하더라도 배우는 점이 좀 더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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