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7. 15:59ㆍ주식공부/투자원칙 철학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업종의 매수매도를 추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투자의사결정은 각자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여야 합니다.
"Why So Scared?"
인플레이션과 긴축 우려로 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맞이하여 연준은 3월 금리 인상에 이어 5월에 곧바로 QT(양적축소)를 시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비치고 있고, 시장은 연준이 시장을 망가트릴 거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실적발표 후 하루만에 30% 폭락한 건 단지 가입자 수 감소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오늘은 QT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다지 좋을 건 없지만 그렇게 두려워할 것도 아닙니다.
우선 QE/QT와 금리인상은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금리인상은 FFR(연방기금금리)를 통한 유동성 관리 정책입니다. QE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서, 유동성에도 물론 영향을 미치지만, 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있을 수 있는 곳에 핀포인트로 찍어서 자금지원을 해주는 성격이 강합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지만, 연준의 금리정책은 기본적으로 무제한 채권매입과 채권매각 기능이 포함되어있습니다. FFR은 기본적으로 '시장금리'입니다. 어떤 은행이 지준 부족이 발생했을 때 초과지준이 있는 다른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올 때 적용되는 금리입니다. 연준이 설정한 FFR 레인지는, FFR이 밴드 상단을 넘지 않도록 무제한으로 채권을 매입해서 지준을 늘려주거나, FFR이 밴드 하단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무제한으로 채권을 매각해서 지준을 흡수하는 형태로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연준이 매입/매각할 수 있는 채권은 국채에 한정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라기보다는, 연준이 국채가 아닌 민간 채권을 막 사게 되면 정부 자금으로 특정 업체나 개인에게 자금지원을 해주는 격이 되기 때문에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입니다.
연준은 긴급사태에 한해서 민간의 채권을 직접 매입할 수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 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CPFF, TALF, TARP 등입니다. 법조항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우리가 이런 걸 할 수 있네?" 하면서 제도를 창설했던 것이지요.
긴금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기구이기 때문에, 긴급상황이 해소되면 없애는 게 맞습니다. 당시 이 기구들은 국채를 넘어서서 회사채와 MBS(모기지담보부증권)들을 매입했습니다. 원래라면 2009년 혹은 2010년부터 이 기구들을 없앴어야 했는데, 그 때 유럽 재정위기가 터집니다. 2015년이 되어서야 유럽도 안정될 기미가 보였고, 금리 인상을 조심스럽게 시도했고, 2017년부터 이러한 긴급기구도 없애는, 즉 지금 용어로 QT를 시행했습니다. (당시에는 대차대조표 축소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버냉키는 QE라는 용어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통화공급이 아니라 장기금리 하락을 위한 수단이었거든요. 버냉키는 대규모 자산 매입, 혹은 신용 완화라는 용어를 사용코자 하였습니다.)
현 시점에서 QT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QT의 의미 1. 할 일을 한다.
현재의 QT는 2017년 QT의 연장선입니다.
사람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세 번의 양적완화로 극복되었고, 2013년 테이퍼링, 2015년 금리인상, 2017년 대차대조표 축소로 끝났다고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2013-15년 구간에도 늘 '더블 딥' 우려가 존재했었고, 유럽의 재정위기는 EU의 붕괴로, 이는 다시금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2015-17년 즈음에야 인류가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인식이 자리잡았고, 이제는 그동안 풀어놓은 유동성을 어떻게 잘 회수할 것인가가 본격적인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취임하자마자 유동성 흡수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고, 연준은 2019년에 오히려 금리를 인하합니다. 그리고 당분간 금리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가 코로나 사태를 얻어맞았죠. 당시 진행중이던 대차대조표 축소는 이후에도 수십 년간 꾸준히 유지되었어야 했는데, 판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잠깐 중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긴급 자산매입 기구는 또 한 번 도입되어 공격적으로 회사채를 매입했습니다.
그림을 볼까요. 2008년에 연준 총자산이 뛰기 전 수준으로 2017년부터 꾸준히 내려갔어야 했습니다. 그게 20년에 오히려 역방향으로 뛰었고, 머나먼 갈길을 가야 하는 거죠.
2022년 현재 연준이 보유한 증권 중 만기도래 물량은 매월 1,000억 달러 정도가 됩니다. 연준에서는 매월 950억 달러를 한도로 대차대조표를 줄일 수 있다고 하였으며, 구체적인 금액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겁니다. 1,000억이 만기도래되니까 연준이 아무것도 안 하면 매월 1,000억씩 대차대조표는 축소됩니다. 근데 950억 이상으로는 줄이지 않겠다는 건, 그만큼 만기연장, 즉 재투자를 하겠다는 겁니다. 자연축소분보다는 좀 더 버퍼를 두겠다는 뜻인 거죠.
현재 연준이 보유한 채권들은 아마도, 08년부터 사뒀던 02-06년발 20년 만기 모기지의 첫 만기도래, 2020년에 샀던 19년발 3년물 채권의 첫 만기도래, 그리고 그 모든 구간에서 샀던 7년물, 10년물 국채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만기도래 물량일 겁니다. 08년에 샀던 모기지나 20년에 샀던 회사채의 차주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꽤 건전한 차주들일 겁니다. 굳이 연준이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고 민간 대출로 소화해도 충분히 생존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사실상 '정부지원'을 받은 차주들이며, 정부지원을 특별한 이유 없이 연장해주는 건 형평성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취약한 차주들은 여전히 있을 거고, 그들이 만기연장을 못해서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질 수 있으니, 연준은 차주의 건전성 상태, 시스템 리스크 전이 가능성 등을 봐가며 선별적으로 만기연장, 즉 재투자를 하겠다는 거죠.
13-18년 사이클이 QE-금리인상-QT였다고 해서 그게 정석인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QE가 전례없던 일이었으니까요. 당시는 시스템리스크로 휘청거릴 때였고, 가보지 않은 길을 걷던 중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도 심각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미스터리'라고 부를 정도로 낮았습니다.) 지금은 시스템 리스크 상황은 지났고, 인플레는 극심합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죠. 그리고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에 PMI도 높으니, 유동성 축소를 안 할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QT의 의미 2. 정책금리의 정책효과 지원
그러나 다짜고짜 유동성을 막 줄일 수는 없습니다. 연준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기관이고, 최소한 '연준 때문에 경제가 무너졌다'는 오명은 뒤집어쓰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화두는 인플레이션이므로,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습니다.
사실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좋은 수단이 아닙니다. 기업의 조달비용을 높여서 물가상승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도산하고 소수의 기업이 남게 되면, 공급이 줄어드는 효과가 되니까 가격은 또 상승합니다. 그래서 1979년 취임한 폴 볼커가 했던 금리인상이 굉장히 용기있는 결정이었던 것이죠. 그 전에 아서 번즈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상실하면서 해괴한 짓을 벌려놓은 바람에 맞이한 스태그플레이션이 금리를 올린다고 마냥 해결될 일은 아니었거든요.
1950년대도 인플레이션이 심했습니다. 전쟁 이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맞이했고, 수요가 넘쳐나는 와중에 공장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금리를 올려봤자 오히려 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공장이 파괴된 건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공장 파괴에 준하는 공급망 붕괴를 겪고 있습니다. 이는 공장을 지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전염병이 끝나면서 해결될 일이고, 전염병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원래 이미 끝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과 상하이 락다운, 그리고 주요 곡물 산지의 기후 문제로 늦춰지는 중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피크아웃하였으나 일시적인 이슈로 가려져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연준의 유동성 통제 도구인 FFR이 정책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중에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려있으면 안 됩니다. FFR은 초단기 금리 시장이며, 은행의 지준이 부족할 때에만 찾는 시장입니다. 지금은 은행에 돈이 너무 많아서, FFR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떨어져있습니다.
(출처: https://fred.stlouisfed.org/series/EXCRESNS)
위 그림은 시중은행의 초과지급준비금 추이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양적완화 이후 지준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2014년부터 테이퍼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15년 금리인상을 맞이하며 초과지준은 점차 줄어드는 국면이 되었습니다. 2019년에 금리인상을 했어도 초과지준은 계속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 지준이 다시 사상최고치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준이 정책도구로 FFR을 쓰더라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3월에 금리인상을 한 이후 그 효과를 연준은 현재 확인하는 중이겠지요. 시중금리는 상승했지만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자연이자율(이라고 추측하는) 2.5% 수준까지 금리를 올렸는데도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으면 연준이 굉장히 난감해집니다. 연준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떨어진 상황은 모두에게 재앙입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든 없든 간에, 연준은 효과적인 카드를 구비하고 있는 '척' 해야 합니다. 그게 연준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연준은 빠르게 정책금리를 인상하기보다는, QT를 먼저 시행해서 FFR이 정책금리로서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우선입니다.
QT의 의미 3. 실질금리 방어
현재는 실질금리(국채금리-CPI)가 마이너스입니다. 은행에 돈을 넣어두거나 채권을 사는 게 구매력 손실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위험자산 구매에 나서고, 이는 자산버블을 더욱 자극할 우려가 있습니다.
통화량을 줄여서 CPI를 누르는 건 둘째치더라도, 당장 눈에 보이는 채권금리를 CPI 이상으로 올려서 자산버블의 가능성을 줄이는 게 시급합니다. 매파 정치인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보면서 더 빠르게 금리인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정책금리가 잘 작동할지 아닐지에 대한 이해는 뒤로 하고 말입니다. 수요발 인플레이션이라면 통화량 축소가 인플레이션 억제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공급발 인플레이션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상이 유효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러나 연준 입장에서 '기준금리 조정이 인플레이션을 누르는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라고 발언하는 건 재앙입니다. 연준이 실제로 힘이 있든 없든 연준은 힘이 있는 척 해야 한다고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무언가 했다가 효과가 없으면 큰일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QT는 시중금리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QE와 QT는 사실상 같은 효과를 내는데, QE를 시행한 작년말부터 이미 시중금리는 오르지 않았습니까. QT는 금리인상 속도를 가능한 늦추면서도 시중금리를 올려서 실질금리를 제로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덤으로 장단기금리차도 늘릴 수 있고요.)
정리하자면, QT는 금리인상을 넘어선 과격한 유동성 축소가 아니라, 금리인상과 별개로 작동하는, 오히려 금리인상을 늦출 핑계가 되면서 연준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괜찮은 수단입니다. 따라서 QT를 하네 -> 연준이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했나보다 -> 무서워 도망가자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식시장이 연준의 KPI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의 펀더멘탈이 무너지는 걸 연준이 보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진짜로 먹고살기가 어려워지면 그때는 연준이 다시 나설 겁니다. 독립변수를 헷갈리면 안 됩니다. 연준은 경제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구이지, 투자자들 엿먹이려고 존재하는 (혹은 파티에 음악을 틀어주는) 기구가 아닙니다.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뭐라고 말을 한들 당장의 유동성 축소는 기정사실입니다. 파티는 끝났습니다. 넷플릭스의 구독자 수 감소는 사실 그렇게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2억 명 구독자 중 20만 명, 즉 1%가 빠졌을 뿐입니다. 한 계정 나눠쓰기를 제재하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가격도 인상했습니다. 코로나 특수를 가장 크게 누린 기업 중 하나가 코로나 특수가 끝나는 와중에 가격을 올려서 고객이 일부 이탈한 게, 기업 가치를 30%나 날려버릴 이슈이겠습니까. (PxQ를 감안하면 이익은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넷플릭스만의,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 거죠. 넷플릭스는 이미 연초이후 30% 가량 주가가 하락했습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AMD, NVIDIA 등 기술기업들의 이익추정치는 다 하향되었고 주가도 하락했습니다. 유동성 축소, 금리 인상 구간에서 에쿼티 듀레이션이 긴 주식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테슬라는 급등하지 않았습니까. 성장이 희소해지는 국면에서 소수의 성장기업은 오히려 더 큰 프리미엄을 받고는 합니다.
(급 컴플라이언스 노티스 - 종목추천 절대 아닙니다. 투자는 각자의 판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썰물이 빠져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는 버핏의 유명한 발언이 있지요. 물론 버크셔는 테슬라를 사지 않았지만, 매크로 국면이 어떻게 되었뜬,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회사가 결국 이깁니다. (묵묵히라기엔 일론은 너무 시끄럽긴 합니다만.) 니프티 피프티 주식들이 70년대에 처참한 하락을 겪었지만, 멀쩡한 회사들은 80년대에 결국 전고점을 회복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쉽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긴 할 겁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봅시다. 언제는 쉬웠나요? 외계인이 침공한 것도 아닌데 대단히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돈을 잘 버는, 믿을 수 있는 기업과 동행하면 됩니다.
피쓰.
Ps. 위에 참조한 보고서를 쓰신 교보증권 임동민 위원님의 자문을 얻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관련 자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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